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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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복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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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90회
- 작성일
- 21-07-12 14:53
본문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는 일상에서 의도하지 않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차별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한다. 그러나 원천적인 의문을 역으로 제시해본다. 산이 높고 바다가 낮듯이 세상의 형태에는 높고 낮음이 자연스러우며 ‘차별은 좋지 않고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이상적 주장에도 사람마다 경험과 가치에 따라서 차별적 의식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결정을 잘 못하는 타인이나 자신을 일컬어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무의식 중의 차별적 모습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으나 ‘장애란 심리적, 정신적, 지적, 인지적, 발달적 혹은 감각적으로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지칭’한다는 원문적 어원을 고려해 볼 때 ‘결정장애’라는 표현이 왜곡이나 비하라기 보다는 그 모습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또는 사실적 요소가 아니겠냐는 의문을 제시하고 싶다.
태생적인 모습이나 형태, 가령 인종, 성별, 생김새 등 그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본질적 모습을 두고 비하하고 불이익을 주는 모습을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찬성하나, 그 사실에 대한 표현이나 그 형태로 인해 기능적 효과성이 저조하여 차등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
보다 결정적으로 2017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 리프트 사망사고를 계기로 지하철 시위를 한 사건을 볼 때, 그 볼모가 불특정 일반 다수에게 회피할 수 없는 피해를 일방적으로 준 행태는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이 매우 강하다. 특정인의 권리를 위해 절대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습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는 거대한 조직이다. 갑과 을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능력과 영향력은 차이가 있다. 이를 토대로 일방이 일방을, 특히 약자를 멸시하거나 피해를 주는 모습은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배제하고 모두가 다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역으로 불평등을 주장하는 억지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손실 가능성과 이익 가능성 가운데 손실에 더욱 예민하기 때문에 그 대부분은 차별에 무감각해진다. 또한 그 대부분은 구색을 맞추는 차별에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촛불 혁명을 통해 대한민국이 진보로 한 걸음 나아갔다 생각했는데 여전한, 어찌보면 더 심해진 갈등, 편가르고 괴롭히고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고 더욱 심해진 것 같아 갑갑하다.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찾아 괴롭히고 핍박하는 상황들을 보면 더욱 씁쓸해진다.
나는 직업적 이유 기타 등등으로 나름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생각했는데 본 서를 읽으며, 최근들어 나도 모르게 균열이 생겨버린 것을 느꼈다. 스스로 조심, 또 조심, 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성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불호가 강한 책이다. 각자의 생각도 다르고 처해있는 입장도, 바라보는 풍경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당연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내 기준은 너무 뭉뚱했고, 내 고민은 매우 얕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등사회를 논하고 복지국가를 꿈꾸지만 삶속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별 당한 경험도 거의 없다. 나 역시 기득권의 범주에 서있게 된 것이다. 한국인으로, 남성으로, 비장애인으로, 정규직으로, 상급자로, 이성애자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지 못했고 그들의 요구와 주장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보다 다소 무리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 국민이 이렇게 변해야한다는 미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 위치는 어디인지 성찰하고 그 위치에서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차별금지법을 하루속히 제정해야한다. 소수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누구보다 사회복지사가 앞장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