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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 7호] 사회안전망을 해치는 복지 규제와의 전쟁은 필요하지 않은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지연대
조회
3,735회
작성일
21-05-23 17: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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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2년차가 ‘규제와의 전쟁’와의 전쟁 속에 시작지고 있다. 지난 20일 청와대에서는 민관 인사 160여명이 참석하여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장장 7시간에 걸친 소위 ‘끝장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공무원 사회의 경직된 ‘관료제’를 준엄하게 비판하면서, 2016년까지 경제 관련 규제를 2200개를 없애는 것을 비롯하여 전체 규제량을 현재의 80%까지는 줄이겠다는 개혁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신규의 성장 동력을 찾고 이를 적극 활성화해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는 규제들이 그나마 자기 몫을 하려는 경제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서서히 말라 죽이는 꼴은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선연한 의지가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초유의 움직임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성장이 참으로 쉽지 않은 시대적 화두라는 점을 반증한다. 쉽게 말해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에 ‘잘 되게는 못해도 확실히 망하게 는 할 수는 있다’는 말로 보통 회자되는 철밥통 공무원들의 규제 중심의 관료제를 뿌리 뽑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이다. 그러나 그래도 살 만한 경제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를 다하자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세 모녀가 동반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에 내몰린 사람들과 어떻게든 그들의 절망을 함께 해보고자 일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선 지원현장들의 먹고 사는 문제 역시 똑같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지엄한 의지도 결국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를 통합과 연대를 중심 가치로 두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이 우선 살 만한 사회를 이루어 그들의 배려와 자비에 기대야만 나머지 국민들의 생존과 존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를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구조화해나간다면 미래는 뻔하다는 말이다. 

혹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혹자는 무슨 일이든 저 좋을 대로 해석하고 갖다 붙인다고 조롱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하루라도 복지 현장에 와서 온갖 법과 규제의 물세례를 한 번 피해보라고 간곡히 이야기하고 싶다.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안 해서 일자리를 빼앗는 건 도둑질이고 죄악”이라고 속 시원한 말씀을 하셨는데, 일자리 창출은 기업과 경제인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있지만 복지 현장도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지서비스를 통해 결국은 인적 자원의 생산적 가치를 높이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으니 일자리 창출을 통 모르쇠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국가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재분배에 힘쓰고 있으니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사회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현장이라 명실공히 자부할 수 있다. 

물론 규제가 모두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시장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복지 현장이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연대와 통합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 현장을 두고 이 날 벌어진 한편의 일화를 보면 시장의 규제는 전반적으로 완화를 하고, 국민들이 규제 완화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불안정성에 대한 불만은 만만한 사회복지계와 같은 약한 현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입막음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우선 대통령은 규제 개혁과 완화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복지계는 규제가 꼭 필요한 곳으로 꼬집어 말함으로써 복지계에서 합리적 규제 완화가 이루어질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또 한 가지 예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이의 오간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조 장관이 청소년들의 ‘셧다운 규제’를 주장하고 나온데 대해 게임 진흥의 입장에 서있는 유 장관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력히 반격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복지계의 규제가 복지 자체의 논리를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 당사자들의 의견 보다는 경제인들의 시장 논리를 중심으로 규제의 강화나 완화가 무원칙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도 해석될 여기가 있어 염려스럽다.

복지 현장의 규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 기본법과 관련법령 및 해마다 바뀌는 지침과 시행규칙 등등해서 골머리가 아프다. 거기에 현실에 맞지 않는 온갖 규제들이 판을 친다. 그 중 시설 설립을 중심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예를 들어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소규모 복지 시설을 설립하고자 할 때 우선 정부는 일체의 시설 지원을 하고 있지 않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 국민들이나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일부 국민들의 욕구를 아예 무시한 처사이나 이것도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시설을 설립하자면 일정한 시설 면적 이상을 마련해야 하고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 유해시설을 피해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다. 청소년 유해시설은 성인들이 음주가무나 일정한 오락을 위해 상시로 이용하는 거의 모든 시설을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이번 규제완화에 학교 부근에 호텔 건립을 시도했던 한 경제인이 반대의 입장을 피력하며 일자리 창출과 경제에 기여하고자 하는 자신을 백안시하는 쓸데없는 규제에 대한 분노감을 피력한 바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 이 경제인이 학교 인근에 호텔을 짓는 순간 그 반경 50미터 내에 청소년을 보호하는 시설의 건립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청소년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생계를 위해 업소들이 즐비한 지역일수록 더더욱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할 시설들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거기를 피해가면 설치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아동과 청소년들이 보통 도보로 복지 시설을 찾게 되므로 일정한 거리를 벗어나기도 어렵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더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복지시설이 유해시설을 피해 시설 설치를 한 후에 유해시설이 반경 내에 진입하게 되면 불법의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은 먼저 설립된 복지시설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처음에 피한다고 피했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시설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만약 시설의 운영자가 자금이 없어 임대를 통해 시설을 마련했다면 임대료는 고스란히 운영자의 몫이 되고 있다. 현재 사회복지계는 서비스 질을 강조하며 시설 이용에 따른 쾌적성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가 이런 시설을 지원하는 곳은 불과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하다못해 건물을 전세로만 마련한다 할지라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데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 자체에서 아예 전세가 귀해지다보니 시설 운영에 따른 압박감이 더 커지고 있고, 이에 가장 심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재무회계규칙이다. 사회복지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정부가 시설을 지원하여 안정적으로 복지사업을 도모케 하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국가보조금에서 월세라도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임대료 등은 사회복지재무회계규칙에 재산조성비로 분류되어 대부분의 시설에서 지출이 불가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임대료로 재산을 조성하는 사람들은 건물주이지 그 건물을 임대하여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절대 아니다. 사회복지사들은 오히려 수수료나 수용비를 내고 공간을 빌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므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맞게 사회복지재무회계규칙에서 임대료를 수용비 및 수수료에 넣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기본적 운영비나 적절한 인건비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시설의 임대료를 복지종사자들이 자부담이나 후원금을 모아 충당케 하는것이 사회복지계를 좀먹고 있는 가장 큰 규제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지자체 일선 공무원들이 지침 등의 해석을 둘러싼 완고한 규제까지 더해지면 정말 일할 맛도 안 난다. 지침에 ‘~등’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면서 곧이곧대로만 지침을 적용하려는 공무원들의 책임면피를 위한 행태들이 만연해 복지현장의 피를 말리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고 너무 만연한 일이라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정작 규제가 향해야 할 곳은 정부와 국가이다. 이미 법령이나 대통령 공약으로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이 선포된 지 몇 해가 지났건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약속도 오리무중이다. 사회복지사업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기본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은 제일 먼저 완화된 규제인지 사회복지계에 기본운영비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해 복지 사업 자체보다는 시설 운영을 위한 후원금 모집이나 프로포절 사업을 따내는데 더 열을 내야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기본 운영비만으로 차분하게 기본복지사업에 전심전력을 할 수 있는 때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이 “죄송하다”며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만을 남기고 세상을 버린 세 모녀 앞에서는 한 자락 배부른 넋두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 대통령의 어머님을 영상으로 뵙곤 했었다. 역사의 평가가 어찌 되었던 어린 내가 그 분께 느꼈던 진심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대통령의 어머님이 살아 계셨다면 분명 대통령께 경제인들만을 부를 것이 아니라, 노숙인과 어린이, 세입자와 한부모, 노인과 장애인, 청소년 등등 우리 사회에서 진정 ‘어머니’가 필요한 사람들 역시 곁으로 불러 세세히 들어주고 다정히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이 틀림없으리라 믿는다. 그 분은 사람꽃이 어디에서 피는지 아시리라.

사회는 끊임없이 규제 강화와 완화의 왕복 운동 속에서 합리적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대통령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실질적인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더 많은 현장들이 이런 대통령의 노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대통령도 기사를 접하고 충격과 안타까움을 아낌없이 표현했다고 하는 ‘ 세 모녀’의 말씀을 다시금 드리고 싶다. 장제비로 들어온 후원금들까지 정중히 사양한 유족들의 기품 있는 행동을 보면 그런 분들을 입에 담는 것조차 염치없는 짓인 줄 잘 안다.

하지만 인간적인 기품을 지키기 위해 결국 우리 사회를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약간의 규제완화로 가능한 일이라면 마땅히 대통령과 정부의 관심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대하고 바라는 바는 이번 노력이 절대 경제인들과의 회동만으로 끝나질 않길 바란다는 점이다. 즉석에서 관료들을 책임을 질타하고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대통령의 진심을 믿는다. 그러니 국민들을 고루 불러 각 부문에서 최소한의 숨통이라도 틔워주길 고대해본다.

먼지바람 속에서 낮은 곳부터 꽃이 피어올라오듯 세상의 이치란 그런 것이다. 낮은 곳, 응달진 곳의 아픔과 고통이 없다면 이 세상을 어찌 속세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또한 자신을 어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을 고루 보살피지 못한다면 어찌 또 위정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이 외침을 간절한 기다림이라 알아 달라. 복지계는 부르지 않더라도 우리가 만나는 그 분들만은 불러 달라, 차라리 복지가 아닌 보편적 제도로 그래서 우리도 사회복지사가 아닌 그저 이웃으로 그 분들 곁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날을 하루 빨리 마련해 달라, 그리고 그런 길에 세워진 저 강퍅한 복지 규제를 치워 달라. 우리의 목숨을 짓밟고 있는 저 규제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