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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29호] 어느 평범한 사회복지학과 학생의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지연대
조회
3,792회
작성일
21-05-23 17:32

본문

 

 

 

column20150810.jpg


2009년 11월 12일. 한창 창궐하던 신종플루를 대비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핸드크림마냥 치덕치덕 바르며 의정부 한 중학교에서 수능시험을 치뤘다. 전쟁 같은 수험생활은 끝이 났고 그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전우와도 같은 친구들과 함께 장밋빛의 캠퍼스 생활을 꿈꿨다. 그러나 교과서와 참고서를 창문 밖으로 내던진 기쁨도 잠시, 제6교시 ‘원서 영역’의 파급력 대단했다. 우리는 또다시 눈치 싸움이 난무하는 원서전(戰)에 참전했고 남아있는 논술, 실기, 적성고사, 면접을 준비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치열하게 다시 준비한 그들 중 ‘모든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답 모를 의문을 가졌던 한 학생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사회복지학과생이기 때문에 타과생보다 봉사활동을 더 많이 했을 뿐, 똑같이 영어 자격증을 준비하고 대외 활동에 참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 다양한 활동 중 복지 쪽 활동을 제외한 활동에서 사회복지학도임을 밝혔을 때 돌아오는 말은 신기하게도 늘 하나였다.

“좋은 일 하시네요.”

 

저학년 때는 개인의 미시적 심리이론에서 거시 환경이론까지 배우며, 개입 기술과 같은 실천 영역의 이론과 지식을 배운다. 프로이트와 에릭슨에서 생태체계까지, 사정부터 종결 및 사례관리의 과정까지 익히고 여기에 사회복지학의 기본 이론과 역사까지 배우면 2년은 쉴 틈 없이 지나간다. 이게 뭔가 하고 정신 차릴 3학년이 되면 자신들의 관심 대상(노인, 장애인, 아동, 청소년, 여성 등)과 관심 분야(의료, 학교, 정신보건, NGO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사회복지 행정과 법에 대해 배우고 나면 사회복지학도의 대학생활은 마무리 된다.

 

3학년 정도 되면 누군가는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반면, 누군가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전공과 다른 진로를 정하기도 한다.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요즘 큰 이슈거리가 되진 않는다. 적성을 찾은 후 진로를 정하기엔 입시가 너무 숨 가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복지학도가 복지계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만큼 혹은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일에 비해 돈을 못 벌어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서’이다.

 

사회복지사의 무너진 전문성 때문에 사회복지학도들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뜻을 품고 왔든, 전망이 좋아서 왔든, 성적에 맞춰서 왔든지 간에 우리는 사회복지학에 대해 배우고 고민하는 재사회화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학점은행제와 정교하게 운영되지 않는 사이버대학에 의해 쉬이 발급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으로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대학시절을 보낸 학부생들은 그들과 자신이 동등한 자격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복지사회로 거듭나면서 사회복지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회복지사를 법제화 하고 법적으로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한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자격 남발은 공급의 과잉을 낳고 결국 사회복지사의 일을 ‘적당히 수업 듣고 이정도 수입을 보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격하시킬 수 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실제로 인간 행복의 근원을 찾아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던 학생은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로부터 “사회복지는 쉬운 과목이죠. 교육학이나 영문학과는 다르게” 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전공 학생들보다 더 치열한 수험시절을 보냈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학부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복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의 학문으로써의 가치를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실천 현장에서 선배 사회복지사 분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짧은 실습과 오랜 관찰과 격렬한 고민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학교에서 이론을 외우고 적용하며 법을 익혀 전문가로써 강하게 교육 받아도 현장에서 실천 지식을 다시 습득해야함을 안다. 그리고 그 노력에 비해 얻는 사회적 대가가 크지 않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자부심과 반비례하는 현실을 알기에 우리는 더 도전하기가 힘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요즘 많이 좋아졌지. 나 때만 해도 말이야….” 라든가 “요즘 애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 “사회복지에서 일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돼.” 라는 말을 안 들어본 것은 아니다. 다른 직군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위해 속상함을 감추고 경쟁하며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도 한다. 선배님들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님을, 잘 되라는 쓴 소리임을 안다. 하지만 자신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타인과 클라이언트의 행복을 위하기엔 평범한 대한민국 20대인 사회복지학도들 앞에 놓인 월세와 생활비, 정년을 앞두신 부모님, 결혼과 같은 갑갑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고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차다. 우린 더 이상 사회복지사 부부가 만나면 기초생활수급자 라는 옛날 농담에 웃을 수가 없다.

 

사회복지사의 처우 및 전문성과 취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단순히 처우개선과 적정 급여 수준을 보장하며 자격 남발을 중지하라는 1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일반 기업체에서 개인과 회사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 적절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처럼 사회복지 업무는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니라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며 이에 대한 사무와 노동의 대가가 마땅히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로 인해 클라이언트와 사회구성원이 행복해지고 그 행복이 공익으로 발전되어 전체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을 꿈꾼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지 않기에 덜 행복한 사람을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공익적 활동에 기여하고 싶었다. 사회복지사 윤리 강령에서는 “사회복지 이념은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 평등, 자유, 민주적 가치를 바탕으로 모든 사회정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사회는 그 책임이 복지계와 사회복지사의 일방적 희생으로 환언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의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회정원이 행복했으면 한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는 나라, 사회복지사들이 행복한 나라, 그리고 그 꿈과 행복이 전체 사회에 광연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현장과 학교와 사회복지학도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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