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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전근대적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해야!(201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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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지연대
조회
3,283회
작성일
21-05-23 17:47

본문

 

 

 

코레일의 전근대적 노숙인 퇴거조치... 뒷짐 진 서울시
'부적절 행동' 아닌 '부적절 사람' 선별... 온당한가?

 
지난 7월 코레일은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퇴거시키겠단 발표를 했다. 이용고객들이 노숙인들에 대해 불편하다는 민원을 제기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용역을 동원해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8월 22일로 예정된 물리력 동원의 날짜가 서울역 광장에 퍼져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역에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긴장감이 팽배해있다. 천막농성이 이루어지고, 그 주변에는 공안, 경찰, 혹은 용역까지도 오가며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과거 서울역 공익요원에 의한 노숙인 폭행사망사건 등과 같이 서울역의 노숙인과 관련된 사안은 종종 발생하곤 하던 마찰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코레일이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하고, (복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역을 통한 집단적 물리력을 동원하겠다고 하여 과거와는 다른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노숙인'이 문제인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금픔을 훔치는 것은 문제 혹은 범죄다. 공공장소에서 지나친 음주소란 행위가 시민에게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 이 경우 이 각각의 행동은 사회적 장치를 통해 규제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규제 역시 사회상황에 비추어 적당한 수준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공공성에 의한 규제는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코레일의 조치는 이와 다르다. 역사에서의 음주소란행위에 대해서 단속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을 겨냥해 쫓아내겠단 것이다. 부적절한 행동의 규제를 넘어 서울역에서 '부적절한 사람'을 몰아내겠단 소리다. 이 판단은 코레일의 권한이다. 이젠 서울역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내 외모가 지나치게 허름하지 않은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에 대한 경험이 모자라 노숙문제를 노숙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조장을 정부가 (예산절감을 위해)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정보가 모자라고 노숙인에 대한 낙인이 강하다. 음주소란 행위 등에 대한 민원이 '노숙인에 대한 민원'으로 표현되는 부분을 코레일이 '노숙인 소탕작전'의 근거로 삼는 것은 기만이고 얄팍한 술책이다.
 
노숙은 저렴주거부족과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빈곤상황에 의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누가 노숙인이 되느냐의 문제이지, 우리나라는 수 만명 이상의 노숙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의자뺏기놀이'에서 져서 노숙인이 되는 것이다.
 
노숙인은 집 없는 사람을 나타낸다. 술을 마시는 노숙인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노숙인도 많다. 집이 없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정보가 많은 곳에서 머무르고, 밤에 잘 곳이 없어 그나마 신변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밤을 보내려는 노숙인이 더 많다. 이번 코레일의 조치는 집 없는 사람은 서울역에 오지마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상류계층의 깨끗한 역'을 지향하는 어처구니없는 서울역의 선민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음주소란 행위나 범죄행위, 혹은 코레일이 언급한 '테러행위'가 걱정되고 우려된다면 이에 대한 대책과 규제를 시행할 일이다. 이것이 번거롭고 복잡하다고 하여, 노숙인을, 집 없고 허름한 사람을 (일거에)몰아낼 일이 아니다.
 
'노숙' 문제에 대한 호도
 
코레일은 노숙인들이 서울역에서 나와 쉼터나 다른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복지부나 서울시와 이 대책들을 협의하고 있으며, 충분한 대책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노숙인이 '분에 넘치게' 복지서비스를 고르고 있어서 그렇지, 이들이 서울역을 나와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나 자활의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노숙문제에 관심을 가진 현장 관계자 중,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몰아내었을 때, 이들이 모두 공공의 복지서비스로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역 인근의 상담보호센터의 응급잠자리는 꽉 차있다. 쉼터가 정원미달이라고 하지만, 쉼터정원이 비현실적으로 과대설정 돼있다는 점은 몇 년간 이야기되어온 사실이다.
 
사실상 쉼터나 보호시설의 복지서비스는 매우 취약하고 현재 상황에선 아무런 여력이 없다. 희망카페, 자유카페 등 언급되는 대책들은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나을 수 있지만)이미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역 스스로가 서울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하니, 어디서 이를 반겨서 설치할 것인가? 정신보건전문요원에게 서울역 노숙인 일제상담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로 연계하겠다고 했지만, 노숙인에 대한 정신보건체계가 취약하여 현재의 대책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점은 과거 우리사회가 이미 경험한 바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 공공의 영역에서는 우리나라 노숙문제를 위해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 현황 정도를 파악하기에 급급한 수준이다. 노숙문제의 실상이나 심지어 노숙인 규모 자체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후속대책(?)이라며 서울역에서 쫓겨날 사람들에 대해 기존의 정책 프로그램이나 과거 시도했다 실패한 프로그램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쫓아내겠다는 것뿐이지 대책은 없다.
 
서울시에서 노숙인 전체 수라고 이야기하는 만큼의 수가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에서 해마다 신규 노숙인으로 상담에 포착된다. 포착되는 노숙인보다 그렇지 않은 노숙인이 더 많다. 노숙인 복지서비스는 절대량 측면에서 취약하다. 난개발에 따른 저렴주거유실로 많은 (잠재)노숙인이 양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숙문제는 집이 없는 사람의 문제, 복지서비스가 안전망이 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다. 마치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복지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서울역에서 난동을 피운다는 식으로 문제를 호도하는 것은 곤란하다.
 
여론조사나 민원조장의 허구성
 
코레일은 노숙인 퇴거조치가 민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인으로 인한 불편함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노숙인을 몰아내는 근거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정책의 근거로 삼으려는 조사는 일정한 엄밀성을 가지고, 적절한 정보의 제공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조사 대상자에 대해서도 적절한 절차를 통해 선별해야 한다. 음주난동의 문제, 노숙의 문제 등에 대해 아무런 정보제공도 없이 오히려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는 식의 설문조사를 여론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만약 빈발하는 KTX 연착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코레일의 (고임금) 간부 모두에게 경제적 책임을 묻고 이들에게서 강제로 돈을 걷어 들여, 승객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는 여론조사를 연착 직후 피해승객들에게 실시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즉자적인 여론이나 민원을 사회적 배제의 장치로 쓰는 것은 타당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기만이다. 이번 노숙인 배제는 코레일의 문제이지 시민의 요구라 할 수 없다. 다수와 소수를 이간질하는 것이지 여론을 수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에 대한 부정
 
이번 노숙인 퇴거조치와 관련, 코레일은 유독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 나선다. 기업으로서 고객의 불편을 줄여야 하다는 것이다. 역사가 가지는 공공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민자역사고 기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자역사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해서 서울역이 동네 슈퍼마켓처럼 개인 것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받은 것,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필요할 땐 공공지원을 받는 것에 아주 적극적이다. '국민의', '서울시민의' 관문이라는 점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자기 편할 대로 그때그때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울역과 주변의 공간이 가지는 공공성을 부정할 수 없다.
 
자기 집 현관에서 누군가 노숙을 하고 있을 때, 공공기관에 연락하여 현관에서 내보내달라고 조치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주요 역사나 공공장소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발생했을 때, 이는 몰아내는 것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문제해결이 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이다.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은 다르다.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몰아내는 것이 다른 역에도 퍼지게 되면(큰 인명사고 없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노숙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미 현장에서는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 조금씩 관측되고 있다. 정부나 코레일이 '일단 서울역은 안된다'며 오히려 공권력이 발휘되기 힘든 다른 장소로 노숙인을 이동시키는 양상이다. 공공성에 대한 부정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코레일의 노숙인 몰아내기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는 난처함을 표현(?)하고 있다. 복지부 장관이 조치를 유보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도 하고, 서울시는 여러 대책을 만들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들리는 말에 따르면, 코레일의 조치는 이미 확정돼 복지부나 서울시는 후속 대책을 만들어야 하니 민간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복지부나 서울시는 노숙인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나 복지기관, 종교단체의 대승적 협력을 무척 많이 요구해 왔고, 이를 노숙문제 대책의 골간으로 삼아온 역사가 있다.
 
서울시와 복지부는 최근 노숙인복지법이 만들어지고, 노숙문제에 대한 정책대응이 복잡하다는 점을 그나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코레일 조치에 대해 찬성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늘 노숙인을 안 보이는 곳으로 몰아내고 싶었지만 그런 정책이 시민사회에 수용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레일 조치에 대해선 유독 무력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장관을 통해 코레일에 유보를 요청했는데도 수용되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후속대책이라도 만들게 민간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서울역, 복지부, 서울시의 협잡에 의한 도시정화 계획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곧 선거도 있고 해서 정부는 나서기 어려우니, 코레일이 총대를 매고 (노숙인)싹 치워버리자'는 팀워크로 보인다. 노숙인복지법을 만들고 전달체계를 개편한다는 최근 정부의 행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관계 전문가, 시민단체, 현장종사자 모두가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코레일의 조치, 정부와 지자체 스스로도 적절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조치에 대해 지금의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코레일과 뜻을 같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뜻은 다르나 방안이 없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협잡 아니면 무능이다.
 
세계적으로 창피한 후진적 사례 남기게 될 조치 당장 철회해야
 
과거 어느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외국손님들 보기 창피하니 노인이나 장애인은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합시다'라는 제안이 있었던 걸 두고 그 나라 (일부의)인식수준에 대해 후진성을 비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집 없는 사람은 좋은 역사에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모티브를 다른 나라에게 주게 될 것 같다. 노숙인에 대한 지원과 규제는 나라마다 많은 스토리를 가진 것이지만, 이번 서울역 퇴거조치가 집행된다면 최근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국제적으로 아주 후진적인 사례를 하나 남기게 된다.
 
코레일(과 정부)의 조치는 일단 서울역으로부터 노숙인을 빼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외곽의 집단수용시설로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전근대적 인권침해조치가 선거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반발도 초래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러다보니 노숙인 개인의 주취문제, 심지어 테러위험까지 언급해가며 '개인의 비정상성'으로 문제를 몰아가기 위해 여론호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나서지 않고 얌전히 숨어 있다.
 
노숙인 복지현장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많은 것을 노숙인에게 퍼주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노숙인의 주거와 자활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가 정비되면 서울역으로 몰리는 노숙인의 수도 크게 줄 수 있다. 문제의 선후를 이렇게 잡아가자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몰아내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대로 용역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몰아내고자 할 경우 인명사고가 발생할 것마저도 우려된다. 정부가 뒷짐 지고 있을 사안이 아니다. 예측되는 상황악화와 그 책임방기에 대해서는 이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집을 잃게 된 경우, 서울역은 가서는 안 되는가? 어딘가 집단수용시설에 입소해야만 하는가? 마치 마지막 월세를 내지 못하는 순간 '등급이 매겨지고', '수용소에 잡혀가야 하는' 비인간적 사회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듯하다. 사회적 취약자인 노숙인에 대해 사회적 배제의 압력을 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통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다.이제는 내 외모와 옷차림으로도 서울역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2011. 8.10
서울복지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