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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

2018.07.17 12:13

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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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두 개의 필명으로 일생 한 사람에게 한 번만 주어지는 공쿠르 상을 각각의 작가 이름으로 받은 최초의 사람이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며 어떠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게 된다. 이는 내가 걸어온 삶에 대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사는 사람은 항상 새롭고 활기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력적으로 보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겸손하게 오늘의 나를 반성하고 성찰하여 오늘과 다른 내일을 살아간다면, 혹여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한다할지라도 나 자신만은 변화를 느끼며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삶은 매일이 새롭고 생기가 넘칠 것이다.

사회복지계도 지금의 자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과 이에 따르는 대가를 기꺼이 치른다면 오늘과 다른 내일의 복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작은 우물에 빠져 눈 앞의 스킬 향상에 몰두한 나머지, 복지국가라는 대해(大海)와 멀어지는 우를 범치 않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내가 근무하고 있는 환경의 부조리와 비리, 인권 침해 등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저항해야 겠다. 또한 나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결별하고 타인과 타기관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연대의식을 고취해야 겠다.

 

똑바로.jpg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책 처음부터 끝까지 '안락사'라는 주제를 매개로 인간의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인위적 연명치료에 대해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면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비단 삶과 죽음뿐 아니라 인종, 직업, 질병 등 인간의 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책 대목이 나오는데 잠깐 소개하면, 주인공 모모가 콜레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모는 콜레라는 그저 병일 뿐 병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뿐 아니라 콜레라가 무서운 병이 된 이유는 콜레라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그리고 콜레라가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된 것이 아니고 어쩌다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을 살펴보면 위 내용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다. 모모는 아랍인(회교도),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 모세는 개신교인이다. 그리고 이들의 직업과 신분 또한 성매매, 걸인, 탁아소, 서류위조자, 의사, 트랜스젠더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직업과 신분 자체에 대해 가치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있다.

인위적인 것, 예를 들면 성매매 여성은 자녀를 양육할 수 없도록 금지한 것, 연명치료, 직업 · 인종 · 종교 등에 대한 판단 등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있다.

인간의 생이란 자신이 계획한 대로 태어나고 사람을 만나고 직업을 얻고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억지로 부정하거나 거스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합성.png

 

아동의 눈으로 본 세상, 그리고 그 세상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꾸밈없는 시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모모는 자신을 돌보고 있는 로자아줌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제3자의 입장에선 불편할 수도 있다. 퇴직한 창녀인 로자 아줌마는 창녀들이 낳은 자식을 몰래 돌봐주는 비용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돌보는 아동 하나하나가 수입과 직결된다.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식구로 살아가며 최소한의 의식주는 제공하는 과정에서 미운정 고운정이 두터워지게 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런 미운정 고운정이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자 전부이기에 특별한 불만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오히려 중산층의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 무미건조하게 생각될 뿐이다. 아동은 보호받아야 하며 교육을 포함한 모든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면 주인공은 방임과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모는 어떤 보호도 원하지 않는다. 죽은 로자 아줌마의 시체와 3주를 함께하면서까지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한다. 이 아동이 갖는 애정을 단지 다른 이와의 애정을 경험해보지 못함으로 인식해야하는 것인지, 이들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인정을 해야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있고, 그 모든 사랑의 형태가 이해가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모모와 할머니의 사랑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니까...
다만, 나는 사회복지사여서인지,, 모모가 지금으로 치면, 아동 학대가 아닌가?? 라는 우려가 들어 자꾸만 들어서 마음이 참 불편했다. 소설을 소설로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직업병(또는 직업적 감수성^^;)이 돋아나면서, 마냥 애틋한 사랑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그런 책이었다.

 

자기 앞의 생! 이 책은 책도 재미있지만 작가에게도 관심이 가는 책이다. 작가는 유일하게 프랑스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인데 더 이상 보여줄게 없다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본명은 로맹가리. 한 번의 공쿠르 상을 받고 자기 이름이 주목을 받는 것보다 작품으로 주목 받기를 원하면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계속 발표한다. 놀라운 것은 같은 기간 본명으로도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결이 너무 달라서 사람들은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결국 그의 유서에서 진실을 확인한다. 그는 또 오랜기간 프랑스 고위직 으로 미국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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