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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지연대
조회
517회
작성일
23-04-25 18:08

본문

 

 

 

빨치산을 말하기 위해서는 여순사건을 알아야 하고, 여순사건을 알기 위해서는 제주4·3사건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1948년 10월 15~16일 경 육군본부는 제주4·3사건 진압을 목적으로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에게 제주도 파병 계획을 하달하였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하는 몇몇 군인들이 부대원을 설득하여 명령을 거부하고 전라남도 동부 6개 군을 점거하였다.  

10월 25일 정부에 의해 여수, 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발효되었고, 여기에서 승기를 잡은 진압군은 그대로 순천으로 진격하였으며, 하루가 넘는 교전 끝에 23일에는 순천을 장악하였다. 진압군은 항명군과 무관한 민간인 상당수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았다. 한편 여수를 포기하고 지리산으로 입산한 항명군은 11월경부터 진압군과 간헐적인 교전을 벌이는 등 게릴라(빨치산)로서 활동하였다. 빨갱이라는 말은 여순사건 이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이고, 남한 정부 단독수립을 원하지 않고 통일정부 수립을 원하는 사람을 모두 빨갱이로 몰았다.

빨치산에 대한 기본 배경이었고, 이러한 배경지식을 갖고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는 빨치산의 딸로서 평생을 살아오며,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이 책에 담았다.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내용을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알아가는 내용이 인상 깊었고, 특히 등장 인물 중 노란머리 여고생이 증언하는 주인공 아버지에 대한 서술이 주목을 끌었다. 세대를 넘어선 우정이라고나 할까... 외형적으로 봤을 때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을 수 있지만, 주인공 아버지는 그렇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우정을 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단 노란머리 여고생에게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아버지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그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대했고, 장례식장 참석자를 통해 증명되었다. 주인공에게는 일하기 싫어하고 술주정뱅이에,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아버지였지만,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도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부모님을 알기보다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책모임에서 내가 책 추천할 차례가 되어 고민을 했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추천하려고 했으나 워낙 소설을 잘 안읽는 타입이라 오래 전 읽었던 소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소설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추천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핫한 소설이라고 하면서......      

얼마 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 봤기에 그런 류의 소설인가?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전혀 다른 장르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조문객들을 통해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가 타도해야 할 대상인 자본주의 남한사회에서 빨치산의 정신을 갖고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회상을 하는 이야기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아버지는 패배했다. 그래서 본인 뿐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탄압과 멸시의 빌미를 제공했고, 본인 또한 그 후과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작가는 그럼에도 묵묵히 견뎌내는, 아니 공산주의 사상보다는 민중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고 빨치산이 된 기본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간 아버지의 삶을 복원해 보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나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소설에서 작가의 체험이 80%이상 그리고 상상력이 20%정도 담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 소설은 그동안 무겁고 비장하게 빨치산을 소재로 다룬 소설들과 달리 위트와 해학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가볍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 묵직한 감동을 유머러스한 상황에서 웃음을 자아내도록 표현했다. 그래서 독자는 눈물을 흘리며 웃게 되는 이상야릇한 상태를 경험한다. 그런 마음 상태를 만드는데 구례의 사투리가 톡톡히 한 몫 한다. 

책을 읽고 정지아 작가의 다른 작품인 ‘빨치산의 딸’을 빌려서 읽어보려고 했으나 작가가 너무 핫해서 그런지 ‘빨치산의 딸’을 도서관에서 빌릴 수 없다.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보다 먼저 나온걸 확인했다. 


나는 왜 소설을 읽는가? 누군가의 삶과 서사를 간접적으로라도 마주하고 싶어서다. 소설의 성패는 등장 인물의 성격창조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성공했다. 아버지라는 인물을 통해 웃고, 울며 나와 유사한 어리석음을 찾게 되고, 내게는 없는 위대한 인간성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아버지는 또 다른 예수의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  그러고보면 수많은 종교와 사상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의 물줄기로 합류하는 건 아닐까? .  울고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인간, 공동체성을 놓지 않는 자유인,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떳떳한 사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경제적 곤궁한 삶을 살았으나 그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온기를 품은 서사를 만드는 부러운 삶을 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굴곡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질곡의 이력을 훈장처럼 지닌 아버지를 둔 딸,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은 구례다. 『구례가 비록 우리 현대사에서는, 피아골공비의 이미지와 겹치는 불운한 벽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고, 당대사를 다룬 걸작 역사서가 탄생할 만큼의 정보가 오가는 물류의 교차로였다. 고을마다 축적된 문명의 심도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정유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해전의 참상을 연민하며 백의종군 하겠다고 쓸쓸한 심사를 달래며 거쳐간 곳이 구례다. 해방 후 지방 건준조직이 최초로 결성된 곳도 구례다.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27쪽』 구례사람들은 의병장 고광순의 순절비를 세워 그 절의를 숭상하고 민족의 정기 기념하는 엄청난 충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마 아버지 고상욱은 의병장 고광순의 혈통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보기도 한다. 구례라는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진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기억하며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펼쳐나가는 형식은 소설을 구성하기에 꽤나 유용한듯 하다. 죽음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고, 참회할 수 있기에!  내 자식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나는 죽음의 목전에서 잘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나를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 것이며 누구일까? 

‘오죽하면 그랬을까?’ ‘생명은 땅을 살 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누구한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있는 거야’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 아버지의 철학과 삶을 잘 표현해주는 말들이다.  참으로 사람 냄새가 우러난다. 소주한잔 찐하게 하고 싶도록! 


‘아버지의 해방일지’ 라는 책의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가? 책에서 말하는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큰 이야기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아버지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큰 흐름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박선생과의 에피소드였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일 뿐 그에겐 무슨 죄가 있을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느낌이겠지.. 평생 그렇게 죄책감을 가지고 하염없는 삶을 살아야한다니.. 복잡한 감정들이 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정치사상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고 유쾌한 부분도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보따리에서 하나하나씩 이야기를 꺼내는 작가의 필력에 놀랐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잘 모를 만큼 잘 쓰였고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해방이란.. 평생 빨갱이로 살아온 아버지였지만 그도 평범한 아버지였고 형제였으며 동료이고 이웃이었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빨갱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삶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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