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쿵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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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복지연대
- 조회
- 2,046회
- 작성일
- 22-04-08 15:51
본문
난데 없이 호모 쿵푸스라니 제목이 유치하다. 좀 유식한 사람이란걸 티내는 방식같은 ‘호모 OOO’식의 표현은 거부감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제목 앞에 수식어라 볼 수 있는 ‘공부의 달인’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마치 공부를 잘하는 세속적인 비법을 연상하게 한다. 마치 입시 또는 자기계발서로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한 낚시질 같기도 하다.
고미숙이란 작가가 늘 강조하는 사항들을 공부라는 주제로 재편집한 책이다. 내용 중 동의보감과 열하일기는 어김없이 등장하고, 내 몸과 내 삶을 공부하자라는 결론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아주 상투적인 내용의 책이라고 폄하하는 것 같지만 진리는 단순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반복해서 언급해도 과하지 않은 얘기들을 잘 엮어 놓았다. 저자의 다른 어떤 책들보다 쉽게 다가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다음 사항을 강조한다.
- 책을 읽어라. 특히 원대한 비전, 눈부신 지혜로 가득 찬 고전을 섭렵하라.
- 소리 내어 암송하라. 소리의 공명을 통해 다른 이들과 접속하라.
-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라. 지식과 정보에 서사적 육체를 입혀라.
- 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즉 스승을 만나고 벗과 함께 공부하라.
- 일상에서 공부하라. 질병과 사랑, 밥과 몸, 모든 것을 배움으로 변환하라.
저자는 낭독을 권장한다. 낭독의 힘을 무의식적으로 느껴봤지만 옛 성인들이 암송의 효과와 좋은 점을 논한 것을 알게되니 낭독을 시도해보고 싶다. 내가 책모임을 하는 이유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도, 사실 앎의 코뮌에 접속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 삶의 반경에서 스승같은 벗도, 벗 같은 스승도 없는 공허함을 발견했다. 젊은이들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주야장천 강조하면서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한 건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질문하며 즐거워하는 일에서부터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믿어본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머리(지식)가 아닌 몸 전체가 반응하며 학습한 때가 언제인지 돌아봤다. 의무교육 기간은 말할 것도 없고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에 와서도 배움의 희열을 온 몸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나의 필요에 의해,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들어간 후에야 학습의 즐거움과 '앎'의 희열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 공부가 단순 지식 쌓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배움이 나 자신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논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거치며 배움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교육체계는 내가 의무교육 기간에 받았던 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의무교육)에서 배운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깨닫게 했는지 돌이켜보면, 현재 나의 삶과 무관한 것들로 가득찬 지식을 대학교 입학을 위한 목적으로 의미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즉 공부와 삶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소외가 일어나고, 학교가 배움터가 아닌 제도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현재 교육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희미하게나마 알겠는데, 이에 대한 대안 제시는 너무 막막하다는 것이다. 수도권 같은 경우 진보교육감이 연속으로 당선되며 변화를 기대했지만, 학교제도와 학습내용은 과거 그대로이고 어떤 새로운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한계를 느낀다. 무기력감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