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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전 서울시의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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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지연대
조회
129회
작성일
24-06-16 07:32

본문

 

 

 

'2024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대전' 공모에 당선된 이일우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이일우 회원님은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다 지금은 잠깐 휴식기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계십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가 출간되었고, 이번에는 단편소설 '쥐꼬리'를 작성하여 당선되었습니다. 

회원님의 동의 하에 단편소설 '쥐꼬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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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에 서있구먼.”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마주앉은 하상신 의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안 이곳저곳에 걸려 있는 울긋불긋 기기묘묘한 그림들이 일제히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힘들겠어. 나한테 비법이 있긴 한데, 워낙 특별한 거라.”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린 후 천천히 말했다.



“쥐꼬리를 삶아 먹어. 최소한 일주일에 한 개씩 3개월 동안. 실험실에서 키운 희끄무레한 거 말고, 건강한 야생쥐. 안 그러면 올해를 넘기기 힘들어.”


하 의장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올해를 못 넘긴다는 말도 충격인데, 쥐꼬리를 먹으라니. 저절로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얼마 남지도 않은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더듬더듬 몇 번을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똑같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어렵게 수소문 끝에 찾아온 무당집이었다.


“저, 그렇게만 하면, 이번에, 당선될까요?”


아무리 3선의원이지만 신기가 있어 카리스마가 넘치는 무당 앞에서 말투는 저절로 공손해졌다.


“그건 내 말대로 하느냐에 달렸어. 그런데, 이 비법은 부작용이 있어.”


“무슨?”


“코끝이 빨갛게 변해. 절대 이상하게 생각 말고. 자네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무당은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투였다. 복채로 준비해간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고 서둘러 무당집을 나오면서 하 의장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괜히 용하다고 소문이 났겠어? 내로라하는 국회의원, 대통령후보까지 줄줄이 맞췄다는데, 시장만 될 수 있다면 까짓것…….’ 이곳을 추천해준 부의장이 원망스러웠지만 이 정도에 위축될 하 의장이 아니었다. 겉은 장비, 속은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하 의장이 아닌가. 복잡한 때일수록 직관을 믿고 행동이 빠른 그였다.


하 의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행복시 시장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려면 강력한 경쟁자인 현직 시장을 눌러야 한다. 실행방향을 설정하자 혐오감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그 담장 위를 지금껏 무사히 걸어왔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하 의장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지난 십오 년 동안 이 서럽고 더러운 정치판에서 의지를 다질 때마다 무심코 해온 의식이었다.


하 의장은 시의회에 들어서자마자 서무주임을 의장실로 호출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서무주임이 빠른 걸음으로 2층 의장실로 들어왔다. 하 의장은 지천명을 앞둔 서무주임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의회 건물에 쥐가 있다던데, 아세요?”


“쥐요? 글쎄, 들은 적이 없는데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무주임의 모습은 깡마른 체구 때문인지 상반신 전체가 굽실굽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의장이 먼저 가볍게 잽을 날렸다.


“서무주임이 어떻게 나보다 의회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수 있습니까? 평소 의회 방역을 어떻게 하길래. 의원님들이나 직원들에게 행여나 나쁜 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이래가지고 좋은 일이 생기겠나…….”


하 의장은 일부러 마지막 말을 흐렸다. 자신의 의도대로 서무주임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얼마 후면 5급 승진심사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승진이라는 민감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좋은 일’로 에둘러 표현한 자신의 센스가 만족스러웠다. 서무주임은 잔뜩 긴장한 채 색깔볼펜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다.


“괜찮은 업체한테 방역사업 계약조건을 알아보세요. 단, 업체직원들한테 쥐꼬리는 따로 모아달라고 하고.”


살짝 미소가 비친 얼굴의 하 의장은 곧바로 단도리를 했다.


“쥐꼬리는 조용히 처리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네네, 알겠습니다.”


서무주임은 난데없는 쥐꼬리미션으로 얼떨떨한 채 의장실을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업무용 수첩에는 쥐, 방역, 꼬리 따로, 승진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고 꼬리 따로 옆에 빨간색으로 별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이정아는 사무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직장에서는 사이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행복시처럼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는 달랐다. 생활소음의 변화가 가장 컸고 사이렌소리도 그 중 하나였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갑작스럽게 울려대는 사이렌소리에 그녀는 흠칫 놀라곤 했다. 대도시는 그렇게 사람들의 사건사고를 먹고 자라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정아가 행복시의회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을 엄마한테 알린 건 지난 여름휴가 즈음이었다. 시집갈 생각도 않고 박사과정을 밟더니 이젠 일만 하는 딸에게 엄마가 불만섞인 말투로 물었다.


“시의회 전문위원이 뭐하는 사람이냐? 지난번보다 좋아?”


“엄마, 전문위원은 시장이나 시의원이 제출한 조례안을 검토하고 의원들한테 보고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좋지.”


“좋다니 다행이긴 한데, 하필 계약직이냐.”


“에이, 엄마가 몰라서 그래. 말만 계약직이지 크게 사고만 안 치면 계약은 계속 연장돼.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잖아,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일반직 공무원들이 시장 편을 들지 의원들 편을 들겠어? 그래서 나 같은 계약직 전문위원이 필요한 거라고.”


엄마 입에서 ‘만나는 사람은 있냐? 너, 올해 나이가 몇 살이냐, 이렇게 마흔 넘길래?’라는 말들이 쏟아지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야 했다. 이정아는 자신의 업무를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도 계약직신분에 대한 걱정을 호의로 바꾸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전까지 중앙부처의 지방사무소에서 전문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정아에게 의회 근무는 아직 낯설었다. 지방의회에서 근무를 오래 한 선배가 진지하게 이직을 권했을 때 마침 10년간의 중앙부처 근무에 염증이 생겼을 때였다.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에 익숙한 역사와 문화에서 정부중앙부처 근무는 겉보기에 근사해 보일 뿐 조직문화는 사무적이고 건조했다. 남의 떡이 커보일지라도 지방자치단체의 인간적인 문화가 내심 부러웠다.


막상 겪어 보니 지방의회라는 곳은 본청의 고참들에게 꿀보직이자 한직이나 마찬가지였다. 본청의 사업부서들보다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약하다 보니 주로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은 고참들이 의회로 발령이 났다. 민선시장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현행 지방자치제도에서 본청보다 승진기회는 적을지 몰라도 자체사업이 적은 의회를 한가한 곳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퇴직을 준비하며 대체로 조용히 지내고 싶어 했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그들만의 형님동생문화가 이정아에겐 썩 내키지 않았다.


“잠시 방역 좀 하겠습니다!”


오후 3시. 낯선 남자가 시의회 전문위원실에 들어왔다. 주로 시골에서 농약을 칠 때 사용하는 네모난 상자를 등에 짊어진 채였다. 기다란 작대기를 사무실 구석구석을 빗질하듯 움직이자 상자에 연결된 가느다랗고 길쭉한 노즐 끝에서 좁쌀 모양의 작은 알갱이들이 쏟아졌다. 호기심이 많은 이정아 전문위원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효과가 있어요?”


“그럼요. 이렇게 뿌려놓고 나중에 쥐가 먹으면 백발백중 밖에 나가서 죽어요.”


“밖에서 죽는다고요?”


“예. 최신이거든요. 쥐들이 이걸 먹으면 밖에 나가서 죽어요.”


남의 고통이 나의 행복인가. 이정아는 방역직원의 설명을 신기해하면서 ‘그러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안도감과 끔찍함이 밀려왔다.


며칠 후 나배고 전문위원이 재밌는 일이라도 생긴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 전문위원, 얘기 들었어요? 지하 세면장 천정에서 죽은 쥐가 발견됐대. 썩어서 구더기까지 있었다는데.”


“어머, 못 들었는데요.”


“어쩐지, 얼마 전부터 지하 세면장이랑 체력단련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더라고.”


“그래요?”


“아무리 찾아봐도 냄새가 날 만한 걸 못 찾았거든. 근데, 세면장 천정 위에서 발견했다지 뭐야. 쥐 한 마리가 죽어가지고. 근데, 꼬리가 없다고 하더라고.”


이정아는 나 전문위원의 얘길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머리 위 천정 너머에 꼬리가 잘린 쥐의 사체가 썩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양 미간이 찌그러졌다. 그런 얘길 재밌어 하는 나 전문위원을 이정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회 주차장에서 새끼 쥐 한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어른 손가락 길이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의 새끼 쥐가 죽어 있는 것을 담배를 피러 나온 나 전문위원이 발견했다. 서무주임이 계약을 체결한 방역업체의 조치는 신속하고 효과적이었다. 이로써 방역을 하고 죽은 쥐는 모두 3마리로 늘었다. 이상한 점은 죽은 쥐마다 꼬리가 잘린 채였다. 마치 누군가 예리한 도구로 일부러 잘라낸 모양이었다.


행복산 중턱에 위치한 행복시의회 건물은 예전에 보건소였다. 의회로 사용하기 위해 십여 년 전 리모델링이 됐다. 낡은 5층 건물이고 바로 뒤에 행복산이 있어 종종 건물 안에 지네가 출몰하기도 했다. 성인남성 집게손가락보다 긴 몸통으로 수십 개의 다리를 꼬물거리는 지네의 모습은 남자직원들까지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쥐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날엔 전문위원실 책상 위에 놓아둔 초콜릿통 뚜껑을 물어뜯은 흔적이 발견됐고, 쏜살같이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고 여직원들이 기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이정아 전문위원과 짧게 인사를 주고받자 보건위생과장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시장님의 공약 관련 조례안을 발의합니다. 긴급하니 잘 좀 살펴봐 주세요.”


“네, 무슨 조례안이죠?”


“행복시 위생환경개선을 위한 조례안입니다.”


보건위생과장은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관내 공공건물과 다중이용시설에 쥐, 바퀴벌레 등을 퇴치하기 위해 약품을 지원하겠다는 게 이번 조례안의 요지였다.


“시민들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취지이니 나쁠 건 없겠네요. 예산은요?”


“다음 정례회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번 임시회에서 조례안만 통과된다면…….”


이 전문위원은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뭐, 결론을 정해놓고 통보하는 거야 뭐야. 의회를 뭘로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싫은 내색을 하는 건 초보라고 생각했다. 더러워서 자리를 피하더라도 따질 것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10년 공직생활 동안 몸에 밴 그녀의 습관이었다.


“근데, 왜 긴급히 발의하세요? 규정상 20일 동안 입법예고하고 회기개시 15일 전까지 의회에 제출해야 하잖아요?”


“네, 위원님. 그래서 오늘 협조를 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게 협조를 구하는 겁니까? 그쪽 스케줄대로 갑자기 찾아와서 통보하는 거지. 입장을 바꿔보세요, 기분이 좋겠나.”


보건위생과장의 니글거리는 말투 때문인지 이 전문위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해서인지 보건위생과장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전문위원실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이정아 전문위원이 행복시 시장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보건위생과장처럼 시청 공무원들이 선출직 시장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충성하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녀는 며칠 후 의장실에서 있을 안건사전설명회 때 이번 조례안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리라 다짐했다. 씰룩거리던 그녀의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의장님, 말씀하신 거 준비했습니다.”


의장실에 단 둘만 남게 되자 서무주임이 미리 준비한 누런색 서류봉투를 건넸다. 서무주임의 얼굴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이 역력했다. ‘공무원한테 승진만한 낙이 없지. 봉사정신은 개뿔, 영혼이 밥 먹여 주나. 그런 건 뭣도 모르는 신참 때나 쓰는 거고. 이 줄만 꼭 붙잡자.’


‘가늘고 길고 건강하게’라는 가훈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서무주임이었지만, 공직생활 25년을 넘기면서 만년 6급 주사로 퇴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한 건 작년 말 큰 딸이 사윗감을 데려오고 부터였다. 시부모 되실 분들 앞에서 시집가는 큰 딸 체면을 세워주고 싶었다. 고시출신이 아닌 공무원들에게 5급 사무관은 그야말로 승진의 꽃이다. 사무관이 될 수 있다면 수천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서무주임이 하 의장 라인이라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하 의장은 일주일에 두 번꼴로 서무주임이 조달하는 쥐꼬리를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하 의장에게 쥐꼬리는 히든카드요 비책이었다. 행여나 소문이 퍼질까 상대당 후보 진영에서 알까 조심스러웠다. 쥐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마누라한테는 당연히 숨겼다. 어느새 한 달을 먹다보니 쥐꼬리의 맛도 처음에나 역겨웠지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미세하고 촘촘하게 솟은 잔털이 눈에 거슬렸지만 흡사 쫄깃쫄깃한 오징어 다리를 씹는 맛이 났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꼬리를 햇볕에 말려서 육포나 가지고 다니며 먹었다. 시장 당선만 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은밀하게 잘근잘근 씹었다. 질긴 쥐꼬리를 씹으면서 오로지 당선, 당선, 당선만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문제는 부작용이었다. 먹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끝이 눈에 띄게 빨갛게 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끝에 생긴 빨간 부위는 여러 개의 좁쌀 크기에서 새끼손가락 손톱크기로 커지더니 급기야 500원짜리 동전보다 커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하 의장 자신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피부색과 유사한 화장품으로 가리기도 하고 과음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지역구에서 자주 마주치는 시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투표 당일까지 후보의 얼굴을 알려도 모자란 판에 매번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는 없었다. 출마후보자 프로필 사진 촬영은 메이크업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마누라가 난리였다.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냐며 병원으로 가자며 떼를 쓰기 일쑤였다. 모든 것을 선거가 끝난 후로 미루자며 아내를 설득하느라 하 의장은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러면서 선거일정 막바지에 예정된 케이블방송사 주최 TV토론회가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했다.


안건사전설명회를 위해 이정아 전문위원과 보건위생과장이 의장실 가운데에 놓인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의장실 한쪽으로 보건위생과 직원들 세 명이 배석했고 긴장한 듯 모두 표정이 굳어 있다. 하 의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전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안건사전설명회는 정식으로 상임위 회의에서 심의하기 전에 의원님들과 전문위원에게 안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안건은 시장이 제출하는 행복시 보건위생환경조례 일부개정안인데요. 먼저 보건위생과장이 안건취지부터 말씀하세요.”


보건위생과장이 말을 받았다. 공식적인 상임위 회의도 아니고 속기사도 CCTV녹화도 없지만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설명 상대가 의장이 아닌가. 보건위생과장은 준비해간 원고를 조심조심 읽었다.


“행복시 보건위생환경조례 일부개정안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제안이유를 말씀드리면, 본 개정안은 행복시 관내의 공공시설 및 다중시설의 위생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사전설명회가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까. 하의장의 코가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몇 주째 지속된 증상이다. 코끝을 손가락으로 계속 긁어도 가려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긁기 시작하면 길게는 30분 이상 가려움이 지속됐다. 설명회를 시작한지 불과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자꾸 코에 신경이 쓰여 보건위생과장의 보고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 의장이 과장의 말을 잘랐다.


“보건위생과장님, 그러니까 이번 일부개정안 요지가 뭐죠? 다들 바쁘시니까 결론부터 먼저 들읍시다.”


“아, 예. 결론만 말씀드리면 쥐나 바퀴벌레를 잡는데 쓰이는 약품 구입비용을 시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조례에 신설하자 뭐 그런 겁니다.”


“그래요? 공식적인 상임위 심의도 아니고 사전설명회 자리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하 의장은 연신 코를 만지작거렸다. 그렇다고 직원들 앞에서 계속 코를 후비고 있을 수도 없고 잠자코 있기는 더욱 곤혹스러웠다. 서둘러 설명회를 끝내고 싶었다. 과장의 얘길 잠자코 듣고 있던 이정아 전문위원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의장님, 외람됩니다만, 이번 개정조례안에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순간 하 의장은 설명회를 일찍 끝내기 어렵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뭐죠?”


이정아 전문위원이 또박또박 의견을 말했다.


“개정조례안의 취지 자체는 저도 공감합니다만, 이번 개정안은 내용적으로나 절차상으로 미흡한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첫째, 집행부가 이번 조례안의 핵심이 쥐, 바퀴벌레를 잡는 약을 무료로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용어에 배석한 직원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보건위생과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량이 크진 않았지만 이 전문위원의 목소리는 의장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둘째, 공공기관이라면 모를까 시민들의 세금으로 민간건축물까지 약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정안은 행복시의회 회의규칙상 회기개시 15일 전에 제출해야 한다는 절차상 규정을 어겼습니다. 의원님들의 심도있는 의안심사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가능합니다.”


이 전문위원의 비판을 잠자코 듣고 있을 보건위생과장이 아니었다. ‘여기서 밀리면 시장님으로부터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배석한 직원들한테 능력없는 과장이라는 비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보건위생과장은 설명회에 오기 전 급하게 살펴봤던 규정이 떠올랐다.


“이 전문위원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51조를 보면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청소나 소독을 실시하거나 쥐, 위생해충 등의 구제조치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긴급한 안건은 15일 이후에도 제출이 가능하잖습니까?”


“저도 그 법은 압니다. 근데요, 그 법률은 공동주택, 숙박업소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시설을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이 소독하고 방역하라는 내용이지, 시에서 직접 개인에게 방역비용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내용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자꾸 긴급하다 어떻다 말씀하시는데, 그 긴급하다는 이유가 뭔가요?”


“그야, 도처에 쥐나 바퀴벌레가 많다는 민원이 제기되니까 이번 기회에.”


“보건위생과는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나요? 도로나 골목, 공원같은 공공시설은 당연히 우리가 책임져야할 영역이죠. 헌데, 민원이 접수됐다고 예산을 들여 개인에게 방역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요? 응익(應益)의 원칙대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비용부담을 해야죠.”


‘회의를 끝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하 의장의 머리를 스쳤다. 집행부에 비판적인 이 전문위원을 누그러뜨리면서 다선의원의 조정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하 의장이 점잖으면서도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얘길 듣고 보니, 이정아 전문위원의 지적이 일리가 있네요. 물론 보건위생과장이 설명한대로 방역도 필요해 보이고. 상임위에서 의원님들이 논의하시겠지만, 예산지원 대상에 민간다중이용시설은 제외하고 공공시설만 포함시키는 게 어때요? 불필요한 오해도 없애고.”


의장이 수정안을 제안하자 보건위생과장도 이정아 전문위원도 얼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의회로 이직할 때 물밑에서 지원해 준 하 의장이었다. 집행부 직원들 앞에서 이정아가 대놓고 하 의장의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소속정당과 상관없이 친화력을 발휘하고 대립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원만히 협상을 이끄는 능력, 고졸학력의 하 의장이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3선까지 살아남은 노하우였다. 선거를 앞두고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 않은 하 의장은 이 전문위원을 노련하게 달랜 후 의장으로서의 무게감을 과시하듯 마무리 말을 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같은 최첨단 시대에 집에서 쥐나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몸에 좋다면 뭐든 먹을 텐데, 쥐가 정력에 좋다고 하면 싹 사라지려나? 그래도 설마 쥐를 먹는 정신 나간 놈이 있겠어요?”


하 의장의 우스갯소리로 잠시 어색한 웃음소리가 번졌다. 하 의장 쪽을 향해 가장 크게 웃은 직원은 설명회 내내 바닥과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던 보건위생과 40대 남성 직원이었다. 하 의장은 다시 코를 만지작거렸다.


하 의장이 의장실 소파에 앉아 지역신문을 펼쳤다. 1면의 지방선거 여론조사결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상신 후보 인지도, 지지도 선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쥐꼬리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모두 날아갈 것 같았다. 대통령, 국회의원은 언감생심이었지만, 행복시 시장정도는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당 공천도 무난하게 받았고 선거자금도 장마철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하니 얼마 안 남은 시장선거뿐 아니라 그 다음 더 큰 선거도 해볼 만 하겠구나 싶었다. 그는 이게 다 쥐꼬리 덕분이라고 믿었다.


행복시 시장 출마 후보자 TV토론회가 열리는 방송국 입구에는 방송시작 한참 전부터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족히 수백 명은 됨직한 지지자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흔들며 야단법석이었다. 그 중에는 한쪽에서 물끄러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정아 전문위원도 있었다. 평소 대칭관계에 있는 시장과 인간적으론 비호감이지만 의회의 어른인 하 의장의 토론광경을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지방의회에 근무를 시작하고 처음 보는 선거행사가 그녀에겐 신기하면서도 생경했다.


오늘 토론자는 모두 7명이다. 하 의장은 기필코 TV토론회에서 자신의 승기를 굳히겠다고 다짐했다. 현직 프리미엄이 있는 행복시 시장을 제외하곤 초·재선 정도의 후보자들이라 만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투표함을 열 때까지 결과를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도 오랜 정치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그였다.


TV생방송을 앞두고 긴장되긴 3선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TV토론회는 리얼(Real)이 대세인 방송트렌드를 십분 반영해서 토론회 시작 전까지 후보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못하게 방송국 관계자들이 엄격히 통제했다. 출연자들 간 사전합의나 조작을 방지하고 후보자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하 의장은 수행비서가 가져다 준 예상질문과 답변자료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방송시작시간이 가까울수록 오히려 머릿속에서 ‘쥐꼬리, 시장, 쥐꼬리, 시장……’만이 떠돌았다. 특정 종교가 없는 그에게 용하다는 무당의 영험한 기도발이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었다. 복채 봉투에 초록색 지폐를 더 넣지 않은 게 새삼 후회스러웠다. 하 의장은 삶은 쥐꼬리를 먹은 걸로도 불안했는지 먹다 남은 쥐꼬리를 투명비닐봉투에 담아 양복 안주머니에 부적처럼 고이 접어 가져왔다.


부작용을 어떻게 감추느냐가 가장 힘든 과제였다. 어차피 방송용 메이크업을 하겠지만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빨간 코가 너무 눈에 띄었다. 가려움도 문제지만 이미 그의 코 전체가 방울토마토 몇 개를 이어놓은 것처럼 빨갛게 변해버렸다. 선거캠페인에서는 사소한 약점조차 상대 후보에겐 나를 찌르는 비수로 활용될 수 있다. 수행비서도 곁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그럴수록 그의 빨간 코는 색깔만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TV토론 준비를 할 때는 주로 마스크를 쓰면서 모면했고 간혹 걱정스러워 하는 참모들에게는 곧 나아질 거라며 다독였던 하 의장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하 의장의 머리에 방법이 떠올랐다. ‘오늘만 마스크로 가리자. 독감에 걸렸다고 말하지 뭐. 아무렴 노출시키느니 가리고라도 방송하는 편이 낫지. 택시만 고집하다 버스, 전철까지 놓치면 안 되니까. 역시 나는 정치가 체질이야.’ 6월에 뜬금없이 무슨 독감이냐는 비난도 염려됐지만 하 의장은 오히려 자신의 임기응변이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와 조명이 제 자리를 잡고 제작진들의 동작이 멈췄다. ON AIR 불이 켜지자 방송세트장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지역케이블방송사 주관 TV토론이지만 생방송은 생방송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담당PD가 아나운서에게 손짓으로 큐 사인을 보냈다. 아나운서가 오프닝멘트를 하는 동안 대기실에 있던 시장 후보자들이 줄줄이 세트장으로 입장했다. 하 의장도 비서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을 나와 토론회 세트장에 들어섰다. 순간, 그는 하마터면 생방송 도중 소리를 지를 뻔했다. 토론회 좌석에 앉은 6명의 출마후보자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뿔싸.


후보자들이 사전에 추첨한 차례대로 짧게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됐다.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7명의 후보들은 모두 독감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토론회에 임하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인사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후보자간 일대일 토론순서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긴장이 누그러졌다. 하 의장은 마스크를 쓴 채 6명의 후보들을 찬찬히 둘러 봤다. 그동안 겪었던 정치적 굴곡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문득 자신의 마스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10초 아니 30초쯤 흘렀을까.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하 의장이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하 의장의 얼굴이 방청객으로 향해 있는 모니터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됐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웅성대는 소리가 커지자 조연출은 방청객들을 단속하느라 분주했다. 토론회를 지켜보던 수행비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하 의장과 눈이 마주쳤다. 10년을 곁에서 모셨지만 수행비서는 지금처럼 강렬한 하 의장의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하 의장은 안주머니에서 쥐꼬리를 넣어둔 비닐봉투를 조용히 꺼내어 오른손으로 꼬깃꼬깃 움켜쥐었다.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https://www.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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